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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1.07.05 ,
  5. 2011.07.02 말하는 대로
  6. 2011.06.18 서른즈음에
  7. 2011.04.26 ,
  8. 2011.03.11 속담
  9. 2011.02.25 졸업
  10. 2011.02.22 정말 없었는지

은하영웅전설 양장본

etc 2011. 12. 7. 08:25


양장본에서는 양 장군이 점 찍고 살아 돌아오기라도 하는건가. 아니면 키르히아이스가 멀쩡하게 나타나서 Love&Peace를 외치기라도 하는건가. 쓸때없이 가격만 겁나 비싸네ㅠ
어차피 1년 넘어가면 포풍 할인하는걸 알고 있으니 지금 지르면 호갱님이겠지. 
조금만 기다려. 곧 내 컬렉션에 넣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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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퍽 어리석었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문고판 한 권만 끼고 다니면 대학생의 자부심을 느꼈고, 원문으로 카뮈의 소설 몇 줄을 겨우 해독하면서 불문학을 한다고 생각했다. 마르크시즘·실존주의·큐비즘 등의 개념이나 프로이트·하이데거·사르트르 등의 이름들을 멋도 모르고 지껄이면서 지식인으로 자처했다. 그리고 우리는 몰려다니면서 학생증을 맡기고 소주를 들이키며 떠들어댔고, 아니면 다방 구석에서 꽁초를 태우면서 문화인 흉내를 냈다.

졸업장을 받고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전공에 대한 것은 고사하고라도, 나는 기초적인 지적 교양조차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할 수도 없는 자신의 앞날이 깜깜했고, 낭비한 대학 생활에 무한한 공허감을 느꼈다. 그후 나이가 들어서 외국을 방황하고 다시 학생 생활을 하면서 내가 지적으로 얼마나 바보스러울 만큼 유치한가를 다시 뼈저리게 느꼈다. 돌이킬 수 없는 귀중한 몇 년을 낭비했다는 생각에 분노와 뉘우침이 엇갈렸다.

이유와 핑계가 없는 것도 아니다. 5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녔던 우리 세대는 불우했다. 생존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을 만큼 우리는 가난과 혼돈, 불안과 전쟁 속에서 불행했다. 교과서가 없어 손으로 스텐슬지에 책을 베껴 등사해서 공부해야 했던 우리들이 특권층으로 생각될 형편이었다. 뜻이 있었더라도 책을 구해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나라 사정은 사뭇 다르다. 잃어버린 우리 세대에 비한다면 오늘의 학생들은 거의가 물질적으로 부유한 편이다. 교수의 수준도 무척 높아져서 뜻만 있으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고, 마음만 있으면 책도 웬만한 수준의 것은 쉽사리 구해 읽을 수 있다.

지금 내가 학생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의 전공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우선 교양이 될 만한 책들을 읽기에 시간을 아끼지 않겠다. 일단 대학을 떠나면 전문적 직업에 바빠져야 하기 때문에 교양을 쌓기 위한 독서 시간을 얻기 어렵다.

현대 사회는 갈수록 더 전문적 지식을 요구하고 따라서 교육도 갈수록 전문적으로 세분되는 경향이다. 오늘의 산업화된 사회는 우리 하나 하나가 하나의 전문적 기술자가 되기를 요청하고 우리를 기술자로서 경쟁시킨다. 치열한 기술적 경쟁에서 밀리면 우리는 사회에서 떳떳이 설자리를 찾을 수 없다.

아무리 기술이 필요하다 해도 그것은 삶의 전부가 아니다. 삶의 목적은 단순한 기술자가 되는 것에 있지 않다. 기술의 중요성은 그것이 삶의 질을 높인다는 데서만 이해될 수 있다. 우리가 하나의 기술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자신도 어떤 기능이나 하나의 물건에 지나지 않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기능이기 전에 살아 있는 한 인간이며, 물건이기 전에 자유로운 주체적 인격체이다.

인격체로서 갖추어야 할 것은 교양이다. 그러므로 교양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누구나가 갖추어야 할 조건이다. 교양이란 인격적 존재로서 타고난 여러 가지 가능성의 개발을 의미한다.

인간에게는 '참'과 '거짓'을 따지는 지적 가능성, '아름다움'과 '추함'을 가르는 미적 가능성, '선'과 '악'을 분간하는 윤리적 가능성, '정당성'과 '부당성'을 자르는 논리적 가능성, '의미'와 '무의미'를 추구하는 종교적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과학적 역사를 통해서, 예술사·문학사·철학사·종교사·정치문화사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여러 측면의 인간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인간이 무엇인가, 내가 무엇인가 알 수 있으며 그런 앎은 우리의 삶을 그만큼 풍요하게 하고 보다 보람있는 방향으로 밝혀 준다.

역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다. 책은 귀중한 과거에의 창구이며 독서는 넓은 세계와 새로운 삶과의 접촉이다. 올바른 독서를 통해서만이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의 고립된 우리가 아니라 보다 넓은 세계 안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인류 역사 안에서의 우리 존재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올바른 독서는 해방인 동시에 빛이다. 어찌 책을 접어 던지고 디스코 장에 가서 동물적으로 엉덩이만 흔들고 시간을 낭비할 수 있겠는가. 독서는 귀중하다.

그렇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 만일 내가 전문대학에 있든가 아니면 내 전공과목이 극히 기술적인 분야라면 적절한 선택이 더욱 절실하다.

나는 우선 읽지 않겠다는 종류의 책들을 들고 싶다. 유행에 아부하고 시대나 사회 분위기에 편승하여 언뜻 보아 화끈하지만 내용이 없고 두서없이 자극적이거나 선동적인 책들, 흔히 베스트셀러라는 책들을 피하겠다. 교조적이거나 도식적인 생각을 반복하는 책, 설교적이거나 구호적인 책도 보지 않겠다.

요새 수필이란 명목으로 쏟아져 나오는 대부분의 글도 피하겠다. 그것들은 신변잡기 아니면 어린 소녀들의 신경에 영합하는 극히 간지러운 감상적 글이거나 혹은 어린 청소년들의 피부적 감각을 자극할 뿐이다. 선동적이거나 설교적 책은 사고의 논리적 기능을 마비시키기 쉽고 신변잡기적이거나 감상적인 수필들은 감수성의 질을 피상적으로 만든다.

나의 우선적인 독서 목적은 정보적이 될 것이다. 나는 인간에 대한 객관적 지식을 필요로 한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무엇을 해 왔고, 무엇을 추구해 왔는지를 전문가가 아니라 교양인으로서의 나에게 알기 쉽게 쓰인 책을 읽겠다. 이 목적을 위해 역사에 관한 책을 많이 읽겠다. 특히 정치사회사·종교사·과학사·문화사·인류학에 초점을 두겠다. 이러한 책들을 통해서 그 동안 인류가 자연과 인간, 죽음과 사회에 대해 얼마만큼 깊고 다양한 생각을 해 왔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얼마만큼 많은 노력과 투쟁을 해 왔었던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역사적 지식은 나에게 세계와 인간, 삶의 의미를 보는 눈을 크게 열어 준다.

나의 두 번째 독서 목적은 개발적이다. 사물에 대한 지각적 감수성, 아름다움에 대한 미학적 감수성, 선과 악에 대한 도덕적 감수성을 개발하여 키우고 가다듬고 싶다. 여기서 나는 문학작품과 만난다. 오락적이고 상품적이기만 한 쓰레기 같은 것에 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인 작품들이 허다하고, 깊이도 없고 재미도 없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역시 적지 않은 위대한 문학작품들은 우리에게 사물을 신선하고 섬세하게 볼 수 있는 눈을 개발해 주고, 현상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느끼고 감상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개발해 준다.

그리고 위대한 문학은 세계와 인생을 철학적인 깊은 차원에서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특히 도덕적 감수성을 심각하고 숭고한 차원으로 고양해 준다. 많은 문학작품을 읽어야 하겠다. 그러나 문제는 세계적 걸작만 해도 수없이 많다는 것이다. 문학 전문가가 되려고 하지 않는 이상 나는 그 가운데 극히 적은 수의 작품밖엔 읽을 수 없다. 내가 보다 가까운 관계를 느끼기 위해서 될수록 현대 작품부터 읽기 시작할 것이며 그 가운데서도 내 수준에 맞는 작품을 몇 권만 고르겠다. 다른 작품들이 무엇이든지 간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짤막한 <지하생활자의 수기>만은 꼭 읽겠다.

세 번째 나의 독서 목적은 훈련적이다. 논리적이며 철저하게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백과사전 식으로 단편적인 지식을 아무리 많이 갖고 있거나 전자 지침판처럼 아무리 예민한 감수성을 갖고 있더라도 그것들이 정확한 논리에 의해 질서가 잡히지 않으면 그것들은 아직도 나 자신의 생각이 아니며, 그것들이 나 자신에 의해 정리되어 질서를 갖추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아직 나 자신의 느낌이 될 수 없다.

철학은 심오한 진리의 제공이라기보다는 먼저 철저한 비판적 정신에 의한 정확하고 분명하고자 하는 논리적 사고의 시련이다. 철학 한다는 것은 소화하지도 못한 알 수 없는 개념들을 구호처럼 늘어놓는데 있지 않고 어떤 문제든지 확실하고 명석하게 철저히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그래서 나는 철학자의 이름이나 여러 가지 철학적 '주의'를 많이 외우는 데에는 아무 관심도 갖지 않을 것이다. 플라톤의 '공화국'이나 데카르트의 '방법론'만이라도 주의 깊게 인내력을 갖고 정독하면서 어떻게 한 문제가 근본적으로 제기되고 어떻게 그 문제에 대한 사고가 빈틈없는 논리에 따라 비판적으로 전개되는가를 배울 것이다.

그럼으로써 나는 사물을 단편적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혼돈 속에서가 아니라 체계적으로 보는 능력을 키울 것이다. 논리적이고 비판적 사고는 지식인으로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도구이다. 그것은 도구적 유용성 때문만이 아니라 그 자체가 예술적 기쁨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독서에 열중하는 마지막 이유는 '표현력'을 습득하려는데 있다. 혼자 아무리 깊고 논리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도, 혼자 아무리 풍부하고 신선한 느낌을 갖게 되어도 그것들이 적절하고 정확하게 표현되지 않으면 벙어리나 소경과 같다.

표현력은 어떤 종류의 책에서도, 신문의 몇 줄 안 되는 기사에서도 배울 수 있다. 간혹 가다 신문의 짤막한 사설에서 통찰력 있고 논리에 짜인 내용의 적절한 표현력을 발견한다. 철학자 러셀이 대중을 위해 쓴 수많은 에세이를 정독하며 나는 표현력을 기를 것이다. 신선하고 적절하며 생생하고 명쾌한 한 줄의 표현은 우리에게 예술 작품 이상의 즐거움을 준다. 4년간의 대학 생활은 바쁘고 짧다. 


다시 찾을 수 없는 그 기간, 나는 위와 같은 독서에 최선을 다하겠다. 나는 하나의 기술자, 하나의 직업인이 되기 전에 자주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인간으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다시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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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SNS

etc 2011. 9. 27. 03:16
http://wallflower.egloos.com/3713546

공감된다. 근래에 본 가장 적절한 글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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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 2011. 7. 5. 04:49

양 웬리는 21살에 엘 파실에서 300만명을 구출하고 소령으로 진급했는데, 나는 21살에 이등병이었구나.

아 xx 민주주의 만세. 대한민국 만세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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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대로

etc 2011. 7. 2. 23:23
 
유재석이 이적과 만나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자신의 자전적 노래를 자신의 최고 전성기에 자신이 만든 최고의 무대에서 부를 수 있게된 것이 아닐까? 꽤 오랜 시간동안 최고의 자리에 군림하며 분명히 여러 내적 유혹이 왔겠지만 스스로 견디며 드디어 말할 수 있게된 당당한 자신의 인생역전 경험담. 요즘 지쳐버린 20대에게 말하는, 시대가 요구한 리더 유재석, 가장 좋아하는 딴따라 이적이 함께하는 완벽한 타이밍. 아마 이적은 처음부터 어느정도 생각을 가지고 유재석과 진행 한 것 같다. 유재석으로 하여금 이제는 받은만큼 해야만하는 리더의 역할을 종용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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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즈음에

etc 2011. 6. 18.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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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 2011. 4. 26. 21:57
매일 같은 행동을하며 달라지기를 바란다면 정신병을 의심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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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

etc 2011. 3. 11. 02:20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빨리 가려면 직선으로 가라.
깊이 가려면 굽이 돌아가라.
외나무가 되려거든 혼자 서라.
푸른 숲이 되려거든 함께 서라.

- 아프리카 속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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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etc 2011. 2. 25. 19:54

잘가.
내년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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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없었는지

etc 2011. 2. 22. 01:09

정말 있었는지 없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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